[쉼터] 나를 쉬게 하는 기도
불교에서 배우는 내면의 쉼
작성 : 2025년 07월 17일(목) 09:53 가+가-

장흥사 관음도량.
요즘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몸이 바쁜 것은 물론이고, 마음은 더 그렇다. 눈은 스마트폰에 붙잡혀 있고, 귀는 뉴스와 소문에 시달리며, 가슴은 억울함과 불안으로 무거워진다. 정작 중요한 ‘나’를 돌아볼 틈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쉼’이 필요하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 멈추는 깊은 쉼이다. 이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라는 형식을 통해 내 마음을 마주하고 내려놓는 실천이다. 바로 불교가 오랜 세월을 통해 가르쳐온 수행의 핵심이다.
불교에서는 ‘정진(精進)’이란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지만, 그 본질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관찰하고, 욕망을 내려놓으며, 마음을 쉬는 법을 익히는 데 있다.
이 수행의 첫걸음은 ‘가만히 있음’이다.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본다. 생각이 떠올라도 붙잡지 않고, 감정이 올라와도 해석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이를 ‘관(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관찰 속에서 ‘반야(般若)’라는 지혜가 자란다.
불교에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두 스님이 개울을 건너려다 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건너지 못하는 한 여인을 본다. 그중 한 스님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넌 뒤 내려놓는다. 옆의 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십 리를 걷는 동안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다. 결국 그는 묻는다.
“스님, 왜 그 여인을 업으셨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미 개울을 건너며 내려놓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계십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미 끝난 일, 과거의 말, 오래된 상처를 내려놓지 못한 채, 우리는 매일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바쁘다.
기도란 이 모든 짐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경구, 그리고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진다’는 연기법(緣起法)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라. 거기서 자유로워져라.”
현대의 기도는 단지 무엇을 비는 행위에 머물러선 안 된다. 하루 한 번,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가만히 머물며, 들여다보고, 놓아주는 시간이어야 한다. 분노 하나, 후회 하나만 내려놓아도 삶은 훨씬 가벼워진다.
기도는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일상이다. 기도는 고요를 들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며, 결국 행복의 중심을 내면으로 돌려준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털처럼 가볍게 살련다.”
이 짧은 다짐 하나가, 우리의 기도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글쓴이/윤석봉
이학박사, 장흥사 신도회 부회장
전 동의대 교수,
전 아주동 주민자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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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쉼’이 필요하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까지 멈추는 깊은 쉼이다. 이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라는 형식을 통해 내 마음을 마주하고 내려놓는 실천이다. 바로 불교가 오랜 세월을 통해 가르쳐온 수행의 핵심이다.
불교에서는 ‘정진(精進)’이란 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하지만, 그 본질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관찰하고, 욕망을 내려놓으며, 마음을 쉬는 법을 익히는 데 있다.
이 수행의 첫걸음은 ‘가만히 있음’이다.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본다. 생각이 떠올라도 붙잡지 않고, 감정이 올라와도 해석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이를 ‘관(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관찰 속에서 ‘반야(般若)’라는 지혜가 자란다.
불교에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 하나가 있다.
어느 날 두 스님이 개울을 건너려다 물이 불어난 것을 보고 건너지 못하는 한 여인을 본다. 그중 한 스님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넌 뒤 내려놓는다. 옆의 스님은 이 모습을 보고 계속 마음이 불편하다. 십 리를 걷는 동안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가득하다. 결국 그는 묻는다.
“스님, 왜 그 여인을 업으셨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이미 개울을 건너며 내려놓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 여인을 업고 계십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미 끝난 일, 과거의 말, 오래된 상처를 내려놓지 못한 채, 우리는 매일 마음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여전히 바쁘다.
기도란 이 모든 짐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경구, 그리고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기고 사라진다’는 연기법(緣起法)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라. 거기서 자유로워져라.”
현대의 기도는 단지 무엇을 비는 행위에 머물러선 안 된다. 하루 한 번, 조용히 나 자신에게 말을 걸고, 가만히 머물며, 들여다보고, 놓아주는 시간이어야 한다. 분노 하나, 후회 하나만 내려놓아도 삶은 훨씬 가벼워진다.
기도는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일상이다. 기도는 고요를 들이고, 타인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만들며, 결국 행복의 중심을 내면으로 돌려준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새털처럼 가볍게 살련다.”
이 짧은 다짐 하나가, 우리의 기도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글쓴이/윤석봉
이학박사, 장흥사 신도회 부회장
전 동의대 교수,
전 아주동 주민자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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